신학 공부의 유익

성도에게 신학은 정말 필요할까?

신학은 흔히 어렵고 전문적인 학문으로 여겨집니다. “그냥 믿으면 되지, 굳이 신학까지 배워야 할까?”라는 질문은 많은 성도들이 한 번쯤 가져봤을 고민일 것입니다.

그러나 신학은 단지 학문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신학은 하나님으로부터 배우고(Deo Docet), 하나님을 가르치며(Deum Ducet), 하나님께로 인도하는(Ad Deum Ducet) 역할을 합니다. 이 글에서는 성도에게 왜 신학이 필요한지 두 가지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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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은 왜 이렇게 어려워졌을까?

솔직히 말해 현대 신학은 어렵습니다. 바르트, 틸리히, 판넨베르크와 같은 신학자들의 책은 일반 성도가 읽기에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신학이 처음부터 어려웠던 것은 아닙니다. 신학이 어려워진 결정적인 이유는 신학이 학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중세 대학과 신학의 학문화

12세기 유럽에서 대학이 등장하면서 항상 세 개의 학부가 존재했습니다. 의학부는 몸의 질병을, 법학부는 사회의 질서를, 신학부는 영혼의 건강과 구원을 다루었습니다.

다른 학문들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신학 역시 철학의 영향을 받아 체계적이고 복잡한 학문으로 발전했습니다. 특히 12세기와 13세기에 재발견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을 가능하게 했고, 그 결과 신학은 점점 더 난해해졌습니다.

그렇다면 성도에게 신학은 필요할까?

여기서 중요한 질문은 “신학이 필요한가?”가 아니라 “언제, 왜 필요한가?”입니다.

신학은 지도와 같다

신학은 지도와 같습니다. 익숙한 길에서는 지도 없이도 갈 수 있지만, 처음 가는 넓은 지역에서는 반드시 지도가 필요합니다.

마찬가지로 성경 전체를 이해할 때, 교회의 역사와 전통을 바라볼 때, 내가 믿는 신앙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고 싶을 때 신학은 우리의 위치와 방향을 알려주는 신앙의 지도가 됩니다.

신학은 이단을 피하게 하고 시야를 넓혀준다

기독교에는 크게 로마 가톨릭 전통, 정교회 전통, 개신교 전통이라는 세 가지 흐름이 있습니다. 개신교 안에서도 루터교, 개혁교회, 감리교, 침례교, 오순절 등 다양한 전통이 존재합니다.

교회사와 조직신학을 공부하면 내가 속한 전통의 뿌리와 특징을 이해하게 됩니다. 이 과정은 이단을 분별하게 하고, 자신의 전통만이 유일한 진리라고 생각하는 좁은 태도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삶으로서의 신학

신학에는 또 다른 차원이 있습니다. 바로 삶으로서의 신학입니다.

초대 교회의 신학자 에바그리우스는 모든 신학자는 기도하는 사람이며 언제나 기도하는 사람이 진정한 신학자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에서 신학자는 책을 쓰는 학자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그 말씀으로 기도하고,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바로 신학자입니다.

루터의 십자가 신학

마르틴 루터는 영광의 신학이 아니라 십자가의 신학을 강조했습니다.

십자가의 신학이란 자신의 욕망과 정욕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함께 죽이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여 이 땅을 살아가는 삶의 신학입니다. 이것은 모든 성도에게 반드시 필요한 신학입니다.

성도에게 신학은 반드시 필요하다

신학은 지도로서 우리의 신앙과 전통, 교리를 이해하게 하며 이단을 피하게 합니다. 동시에 삶으로서 말씀을 읽고 기도하며 사랑을 실천하게 합니다.

이 두 가지 의미에서 신학은 선택이 아니라 신앙을 건강하게 지키기 위한 필수 도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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